<월플라워>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두 개를 골라보자면, 하나는 찰리가 풋볼 경기를 보러 가서 우연히 패트릭을 만난 장면이야. 자연스럽게 환호하는 관중들 사이에서 찰리는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뚝딱거리는 외톨이 소년이지. 그렇지만 같은 수업에서 만나 약간의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패트릭을 발견하자,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초현실적인(!) 용기를 발휘해. 새 학기 옆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고 마이쮸 하나를 건네본 적 있다면, 찰리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지 알 거야. 암튼 그 어색한 순간을 연기하는 로건 레먼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야.

또 다른 하나는, 약에 취한 찰리가 정신을 가다듬어 보려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야. 마치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찰리’라고 불러보지만, 아무래도 쑥스럽고 어색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지. 스쳐 가는 장면이긴 하지만, 찰리의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서 좋아해. 좀 부끄럽긴 하지만, 가끔 이 장면 생각이 나면 나도 거울 앞에서 내 이름을 한번 불러 보곤 해. (그러고는 거울 속 내 눈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낯간지러워서 그냥 이나 닦는데, 글쎄, 마음이 너무 힘들어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날이면 한 번씩 부르게 되긴 하더라.)

거울 앞에 서면 가끔 고등학교 1학년 무용 시간이 생각나. 한국무용의 기본 동작을 외워서, 거울 앞에서 2인 1조로 수행평가를 봤어. 동작을 끝낸 나에게 무용 선생님이 ‘너는 참 소년 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을 왜 내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 동시에 어딘가 들킨 기분이 들기도 했지. 찰리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아무튼 거울 속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아.

영화 초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가까워지기 위해 용기를 내는 찰리의 모습에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발견해. 낯을 많이 가리면서도, 언제나 가까운 친구를 만들고 싶어 했거든. 편지도 얼마나 많이 썼던지. 물불 안 가리고 마음을 쏟아붓고는 했어.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관계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는 했지. 난생처음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영원함을 느낀다(I feel infinite.)'고 고백하는 찰리처럼. 다들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베프하자'는 친구들 한 명쯤 있었지?

맞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는 해바라기 같은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해. 그 사람의 언어와 세계를 배우고, 초청받고, 배려하고, 그 사람의 우주로 기꺼이 발걸음을 뗄 때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샘이 그런 식으로 찰리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찰리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샘이 대학에 갔다면 두 사람은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글쎄. 다행히 찰리는 옆구리 찔렸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거절당할 수도, 영영 애매한 사이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관계의 허들을 잘 뛰어 넘었기에 찰리는 더이상 이별을 겪지 않아도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