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찐하와 김서른의 모습.gif ㅗㅜㅑ 열일하는 옽뜨스텔라가 김서른의 아직도 하이틴 4호를 들구 와씀미다~ 이번 호에는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던 2018년작 <벌새>를 본 김서른씨가 진정 원하는 성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여정을 담았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은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알을 어떻게 깨고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김서른씨! 과연 그는 이번 호를 통해 또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뚜둔) 주민님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찐하는 다음주에도 돌아오겠슴미다~
나는 가끔 아직도 여전히 열아홉 살이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김서른은 마침내 서른이 됐다. 그 사이 생일도 지나서 완전히, ‘빼박’ 서른이다. 서른을 열어젖히면 샴페인처럼 요란한 거품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저 진로 소주처럼 조용하고 단정하다. 생일 핑계로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선 소주 한 잔을 따라두고 앞으로도 살아온 날들과 다르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부모님의 집이다. 고향을 떠나 낯선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돌아온 지 3개월이 넘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독립했다가 서른이 다 돼서 집으로 돌아왔으니, 거의 10년 만에 온 식구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셈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나는 혼자 살다가 룸메가 생기니 참아야 하는 게 많아 열 받고, 부모님은 나가 놀지도 않고 집에만 박혀있는 군식구가 영 신경 쓰이는 눈치다. 일하러 나간 엄마가 ‘집에 고등어 있으니 구워 먹으라’며 전화하면, 나는 다시 열아홉 살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나의 열아홉 살은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우울했던 시기인데, 내가 맞닥뜨린 모든 불행의 근원이 내가 아니라 나의 부모님에게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친구들과 이마 맞대고 속삭이며 나눈 내밀한 대화 덕분에 사연 없는 가정은 없다는 걸, 그러니 누구나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는 걸 알긴 했지만 그걸 뛰어넘을 방법이 없었다. 내가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갈등의 골을 위태롭게 디디며, 나는 대학이 유일한 탈출구인 줄 알고 공부에만 매진하며 버틴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었다. 성인이 된 후 다행히 우리 가족의 문제도 서서히 좋아져서, 가족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나만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었다. 살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지할 만한 느슨한 공동체 정도? 그러나 내가 집에 돌아오고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부대낌을 느낀다. 함께 저녁밥을 먹고, 각자 TV나 핸드폰을 보다가 잠드는 평범한 일상 속에 문득 열아홉 살의 기억들이 솟아오른다. 서로에게 고함 치고 의심하고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던 시간이 문득, 지금의 이 평화에 의심의 균열을 내고야 만다. 은희: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콩가루일까. 수희: 우리 가족은 다 따로 살아야 해. 은희의 언니 수희의 말처럼 정말 따로 사는 게 답인 걸까! 이 모든 거, 다 안 보고 살면 그만일까.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영화 <벌새>를 떠올렸다.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영화 <벌새>는 1994년, 열네 살 중학생 은희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 남자친구 등 은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사이의 사건을 묘사함으로써 그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만들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김보라 감독은 자전적 기억 속에서 <벌새>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가 쓴 <벌새: 시나리오 집>의 ‘작가의 말’을 보면, 은희의 많은 부분이 실제 감독에게서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억을 영화로 가공하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엿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모든 기억들을 채집하고, 기록했다. 휴대폰 노트와 녹음기에, 일기장에, 메모장에,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영화 <벌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울부짖는 그 아이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 부끄러워하는 그 아이를, 집이 있지만 집이 없다고 느꼈던 그 아이를 자주 만났다. 그 아이를 집중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과정은 내가 피하고 싶던 그림자와의 만남이었다.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내 모습 안에, 여전히 울부짖는 중학생 아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감독의 실제 어린 시절이나 영화를 만들던 때의 모습을 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내가 지금 겪는 감정은 그가 책에서 언급한 ‘내가 피하고 싶던 그림자와의 만남’ 때문에 생겨난 것과 비슷하다. 모든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가정의 사소한 불화와 불안을 딛고 어른이 됐으며, 그건 더는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요즘에는 여전히 그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며 나를 때때로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괜찮은 척만 해왔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 보편적 은희 그러다보니 김보라 감독이 자꾸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의 시작을 캐묻고, 갈등을 직면하고, 해소하고, 그걸 풀어내어 <벌새>라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벌새>는 은희가 겪는 모든 폭력과 결핍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구조에 기인한 것임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소화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개인사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으나,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건 ‘자기 부정’에서 ‘자기 긍정’으로 흘러가는* 미덕 때문 아닐까. *2019년 11월, <벌새> 마지막 GV에서 김보라 감독은 <벌새>를 “자기 부정에서 자기 긍정으로 나아가는 단호한 이야기 구조”라 설명했다. 영상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나, 그때 당시 행사에 참석하여 따로 기록해 둔 메모를 참고해 옮겼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 번이라도 창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대학생 때 들은 시나리오 작법 수업에서 첫 과제는 ‘내 인생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한 장면으로 써오는 거였다. 그 과제를 제출한 다음 날, 약간 질려 버린 표정으로 교수가 던진 첫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여러분이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온 지 미처 몰랐네요. 오늘 과제는 저만 알고 넘어가겠습니다^^...” 나 역시 우리 집의 한 장면을 고대로 묘사했기에 민망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은 결코 작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상처의 순간은 있지만, 그걸 ‘작품’으로 빚어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깊숙이 ‘내 이야기’인 것은 결국 다른 이의 이야기가 된다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가장 구체적일수록, 그것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을. - 그렇게 가족들과의 화해가 온전해질수록, 시나리오는 좋아졌다. 자신과 온전히 직면할수록, 글은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갔다. 사랑하는 서른을 그리며 <벌새>를 처음으로 본 2019년 개봉 당시, 나는 혼자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나는 이런 일기를 썼다. “영지쌤 같은 사람이 내게 꼭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런 사람도 없었고 굳이 찾지도 않았다. 은희처럼 어딘가 털어버려야 또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다정하고 조용한 음성,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려 깊은 태도. 꿈처럼 좋은 김영지 선생님의 편지 때문에 나는 한 세월을 무사히 건너왔다. 그 시절의 내게 아무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그가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은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돌아가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이 글을 쓰면서 다섯 번째로 영화를 봤다. 이제는 김영지 선생님의 부재를 느끼며 아쉬워하기보다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사랑받고 싶어 자신의 결핍에만 골몰하는 어린아이를 지나, 누군가를 대가 없이 사랑하여 곁을 내주는 어른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김영지 같은 인물을 만들고,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나쁜 일들이 닥치는 걸 알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오늘 주민님에게 보낸 이 글이 영화 <벌새>의 안내서가 아니라, 철없는 인간 김서른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기장이 된 것 같아서 부끄럽다. 그렇지만 요즘 내가 하는 솔직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상처투성이인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아홉 살 김서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게 올해 서른이 된 김서른의 목표다. 나는 재능 있는 창작자가 아니라서 <벌새>처럼 귀한 영화를 만들진 못하겠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해봄 직하다. 그 사랑을 디딤돌 삼아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길 꿈꾼다. 2022년, 사랑하는 서른을 그리며. 벌새를 만드는 과정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비로소 집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치유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됐다고, 용서를 구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때로 잔혹하고, 서늘하고, 아프고,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었다. 2019년 11월 27일, 압구정 CGV. 감독님이 GV 시작부터 끝까지 우시는데 그 와중에도 말씀을 정말 잘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른 차기작을 내놓으세요🔫 ❤️ ![]() ID: 스물아홉 김서른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철없는 생각과 이제 10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꼰대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그래도 그 나이 때만이 겪는 찬란한 성장 앞에 맥을 못 추고 마음을 줍니다. <아직도 하이틴>은 매회 영화나 드라마 속 하이틴 캐릭터 하나를 택하고, 그가 겪는 성장의 지점을 살펴보는 에세이 코너입니다. 대단히 정교한 분석이나 비평보다는 '그땐 그랬지, 나 아직도 그러네...' 식의 감상이 될 것 같습니다! 평범하고 느릿한 제 삶보다는, 2시간 안에 훌쩍 커버리는 가상 캐릭터의 성장이 아무래도 더 잘 보이니까요. 그들의 성장에 기대어 제가 어떤 시간을 지나온 건지, 저도 곱씹어보려 합니다. 마침내 서른 살이 되거나, 스물아홉 해의 솔로 생활을 청산하는(!) 그 순간까지 연재합니다. from. 김서른 |
OTT 세계를 부유하는 잡학 다식인을 위한 안내서